[공병호의 뉴스레터]중독

얼마 전에 사북읍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좁은 곳에 이처럼 많은 전당포가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원대 인류학과의 김세건 교수가 정성을 들여서 의미있는 책을 펴냈습니다.
‘강원랜드에 비낀 도박공화국의 그늘’이란 부제의 책 제목은 <베팅하는 한국 사회>
입니다. 정말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누구든 빠져들 수 있는 ‘중독’의 위험을
새길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1. 정부가 사행산업의 선두에 서서 ‘인생역전’, ‘이번에는 당신의 차례입니다.’를
외치며 국민들에게 베팅하라고 권한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경마장, 카지노장,
경륜장, 경정장, 사설오락실, 증권거래소, 아파트분양사무소 등을 가득 메우며
올인(all-in)하고 있다.

#2. 한국 사회는 재정수입 확대, 지역개발과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사행산업을 확대 장려해왔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질적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하였다. 특히 2000년 폐
광지역 활성화 방안으로 개설된 강원랜드 카지노가
성공시대를 열어가면서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사행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마, 경정, 경륜, 사설카지노마, 사설도박장 등의 불법적 사행 산업이
전국을 도박공화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3. 마약, 알콜 등과 같은 “다른 걸로 망가지면 저 혼자 망가지는데,
노름으로 망가지면 사돈에 팔촌까지 망가진다”는 말처럼, 도박 중독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10명에서 17명은 된다고 한다.

특히 도박으로 말미암아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박 중독자의 가족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이 가족원 중의 누군가가 도박에 빠져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도박중독의 상태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
빚은 빚대로 엉켜있고 나아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도 엉망이 되어 있다.
도박중독자의 문제가 그대로 가족에게 전가된다.
가족들이 도박 중독자에게 느끼는 배신감, 수치감도 잠시이다.
가족들은 도박 중독자의 직장 생활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그의 인생이 잘못되지 않을까,
누가 이 사실을 알게
되지는 않을까 등으로 노심초사하여 도박중독자가 저지른 일의
뒤처리를 소리 소문 없이 한다.
물론 가족들은 도박 중독자의 한 순간의 실수쯤으로 여기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4. 그러나 어찌 도박이 단 한번으로 끝날 일인가?
눈물로 호소하고 각서를 쓰고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다. 문제는 되풀이되고 더욱더
악화될 뿐이다. 이제 모두가, 도박자 자신의 삶의 안식처이자 최후의 보루였던
가족마저 떠나간다.
도박자들이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보통 삶이 밋밋하게’ 영위되던
일상 관계 및 공간마저 상실하였다.
그럴수록 잃어버린 모든 것을 ‘한 방’에 만회하기 위해 더욱더 카지노에 목을 매며
대박의 꿈의 세계로 빠져든다.

#5. 그러나 그 꿈도 잠시, 빈손으로 카지노 문 밖을 나서는 순간 폐광산에서 불어오는
석탄 내음과 함께 회한이 밀려온다. 강원랜드 카지노 정문의 울타리에 걸쳐 앉아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내며 초라한 나를 바라본다.
왜 내가 이렇게 되었지?

#6. 카지노 노숙자 대부분은 게임장을 벗어나면 만감이 교차한다.
카지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
�遠� 느끼며,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라는
명세를 수없이 되뇌며 입술을 깨물어 본다.
도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때로는 도박중독예방센터에 가서 상담을 하기도 하고, 나아가 스스로 카지노 출입금지를
신청해보기도 한다. 이는 도박중독예방센터의 출입금지 신청자수의 변화에도 잘
드러난다.

#7. 5년 전 평생동안 근무한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소일삼아 강원랜드 카지노에 드나들었다가 도박에 빠져 약 5억원을 잃었던 사람의 회한은
다음과 같다.

여기(찜질방) 와서 이런 꼴로 있어도, 서울에 있을 때 보다는 회의가 적어,
서울에 있으면 돌 거 같애. 집사람이 아침에 8시 30분 되면 나간다 말이야.
집에 나 혼자 있어요. 아파트 12층인데, 이렇게 내려다보면 광장에 분수대를 만들어
놨어. 요즘에 토요일, 일요일에 분수를 뿜어 올린다고,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평탄하게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게 60 평생을 살았는데,
답이 왜, 이렇게 나와 버렸나?
그런 생각으로 베란다에 앉아서 밑을 내려다보고 담배를 피며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바로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꼭 술 취한 사람 같애,
얼굴이 뻘게져 가지고, 뻘게요. 소주 한 서너 잔 막은 사람차럼. 그럼 그걸 어떻게
달래보려고 뒤척거리고, 비디오도 빌려다 보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해소가
안 돼. 작년에 하도 리스크가 커서 이걸(도박) 좀 안 해보려고 미국을 갔어요.
작년 3월 달에, 그래서 두 달 한 보름 동안 이 친구 저 친구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있다가 왔는데 끊지를 못해. 나도 결단력이 없어서 많이 없앴습니다.
이제 나야 뭐 다 살았으니까. 그런다 그러지만, 지금 도박에 지금 젖어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안타까워요.
내 경험으로 보면 이건 뭐 배움이나 인격이랑 상관없는 겁니다.
그렇게 초연해질 수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돈을 잃고 나니까, 이건 꼭 없애야 될 겁니다.
내 주위에도 참 많아요. 망가진 사람.(차성진, 남, 62세, 서울, 2005.7.20)
-출처: 김세건, <베팅하는 한국 사회>, pp.250-255.

출처  : 공병호의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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